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롬 보나파르트 (문단 편집) === 엘리자베스와의 만남 === [[1792년]] 보나파르트 일가는 프랑스 본토로 이주하였으며[* 사실 카를로는 죽기 전에 자신이 모시던 상관이었던 코르시카 섬의 관리이자 [[혁명가]]였던 [[파스콸레 파올리]]가 코르시카 섬이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넘어갈 때, [[루이 16세]]에 의해 루이 16세의 코르시카 섬 법률 고문 대표에 임명되고 그가 국적을 프랑스로 바꾸자, 그도 프랑스로 [[국적]]을 바꿨다. 그래서 그의 가족도 프랑스의 국민이 되었기 때문에 레티치아가 그의 자녀들을 데리고 어렵지 않게 프랑스 본토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롬은 프랑스에서 교육받고 [[해군]]으로 입대한다. 해군 복무중 [[미국]]에 건너갈 일이 생겼는데[* 당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갓 [[독립]]을 쟁취하던 시절로, 당연히 영국과는 적대 관계였고, 영국은 또한 프랑스와도 전통의 적대 관계였고, 또 미국의 독립 전쟁에 프랑스가 막대한 군사지원을 해 미국의 독립에 큰 도움을 주었던 관계로 자연히 당시 신생 국가였던 미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게 되었으며, 양국의 군인들도 두 나라를 서로 오가면서 많은 교류를 하고 군사 정보를 공유했다. 제롬도 이 때문에 미국에 건너간 것이다.], 이 때 그의 첫 인연인 엘리자베스 패터슨(Elizabeth Patterson)[* 1785-1879, 원래 [[아일랜드]] [[장로회]] 교인이었던 윌리엄 패터슨(William Patterson)의 딸로, 윌리엄은 미국 독립 선언 당시에 미국 [[메릴랜드]]에 정착해 [[철도]] [[회사]]를 세우고 그 지역의 거부(巨富)가 된 사람이다.]을 만나게 된다. [[파일:external/www.themagazineantiques.com/img-cc-nov-dec-2013-betsy-bonaparte_134629169984.jpg|height=450]] 엘리자베스 패터슨. [[파일:external/knopfdoubleday.com/Berkin-jkt-crop-196x250.jpg]] 흰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엘리자베스. 제롬은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한 연회장에서 엘리자베스 패터슨을 보고 반해 그녀의 아버지인 지역의 유지(有志) 윌리엄을 찾아가 결혼을 승낙받은 뒤, 그녀와 1803년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이 결혼은 일종의 세상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나는 가톨릭 신자였던 제롬이 장로회(신교도)인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가톨릭 세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고, 둘째는 그 당시 이미 프랑스의 권력자였던 형 나폴레옹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폴레옹은 제롬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자유분방한 성격의 제롬이 행여나 어떤 사고나 치지 않을까 어머니 레티치아와 동생을 들들 볶았으며 떠나기 전까지도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총각 동생은 형에 대한 반발심으로, 엿이나 먹으라는 심산으로 대놓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해버렸으니,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과, 당시 프랑스의 최고 권력자 나폴레옹은 상당히 분노했을 것이다.[* 사실 제롬은 결혼할 때 처음에는 교황 [[비오 7세]]에게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을 허락받으려고 했으나 비오 7세는 당연히 신교도와의 결혼은 용납할 수 없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제롬은 불만을 느껴 자신의 신분(프랑스 최고 권력자의 동생)을 이용해 교황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결혼을 허락했다.] 이윽고 엘리자베스가 [[임신]]하자, 제롬과 엘리자베스는 볼티모어를 떠나 [[유럽]]으로 이주했으며, 형 나폴레옹의 통치 영역이던 프랑스로 들어가기 위해 엘리자베스를 [[포르투갈]]에 놓아두고 프랑스로 가서 형을 설득했다. 그러나 형은 제롬이 제멋대로 결혼을 한 것에 분노하며 절대 허락하지 않고, 제롬을 계속 질책하며 당장 엘리자베스와 [[이혼]]하도록 명령했다. 분위기가 꽤나 험악했기에 제롬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나와서 다시 포르투갈로 향해 엘리자베스를 만났다. 엘리자베스는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이었으며, 이 때문에 그녀는 그녀의 아들이 프랑스 최고 권력자의 [[조카]]로서 프랑스에서 출생하기를 원했고, 제롬은 그녀의 뜻에 동의하며 그녀를 데리고 배를 타고 프랑스 [[국경]]에 거의 도달했다. 그러나 이를 이미 예상한 나폴레옹은 군대를 동원해 그들의 프랑스 영토 진입을 막았고, 제롬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제롬과 그녀는 고민했고, 계속 결혼생활을 고집하다가는 갓 태어난 아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엘리자베스는 끝내 제롬과 이혼을 하고 만다. 태어난 아들 제롬 나폴레옹은 엘리자베스가 고향 볼티모어로 되돌아갈 때 데려갔다. 그로써 제롬은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